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레 군항 공습 (문단 편집) === 7월 24일 === 1945년 7월 24일 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말 그대로 하늘을 까맣게 메운 [[미 해군]] 함재기들이 구레항으로 몰려들었다. 이 날 미 항공모함 부대가 띄운 [[소티]]는 무려 1,747소티로 그야말로 가공할 물량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대규모 [[항공모함]] 항공대 공습은 전례가 없었다. [[진주만 공습]] 때 일본군의 1, 2차 공격대의 총 소티(전투기+공격기 총합)가 350소티였으니 5배에 가까운 소티를 날린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일본 해군의 전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항공 전력은 미약한 데다가 출격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었고 [[대공포]]도 태부족인 데다가 [[레이더]]도 당시 [[일본군]]의 기술력 덕분에 능력이 바닥을 달리던 상태였다. 이에 더해서 선박 수리 시설과 [[독]] 등 항구 자체를 대공 방어할 필요성 때문에 대다수의 함정에 설치된 [[대공포]]까지 대부분 철거해서 육상 진지로 이동한 상태였으므로 이번 폭격의 주요 목표인 대형함은 '''[[중순양함]] [[아오바(중순양함)|아오바]]를 빼면''' 말 그대로 대공 능력이 없다시피했다. 그래서 [[이세]]처럼 [[주포]] 고각을 최대로 올린 후 [[3식 통상탄]]을 마구잡이로 발사하는 것이 대공 사격의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아오바는 대공 화기를 증설하고 군항의 얕은 곳에 정박해서 대공포 진지로서 나름대로 준비되었지만 이건 배의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본 해군이 해상 대공포 진지로 활용한 경우였다. 구레 군항에는 그 외에도 전손 판정을 받아 대공 [[포대]]로 개조된 [[가이텐]] 모함 [[키타카미]]가 있었고 대공 화기를 떼어내지 않은 항공모함 [[카츠라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대공 화기를 충실히 갖추었다고 해도 너무나 열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식으로는 공습에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큰 목표였던 항공모함 [[아마기]]가 집중적으로 폭격을 얻어맞고 대파당했고 아마기의 함장 히라츠카 시로 대좌는 전원 퇴함 명령을 내려야 했다. 뒤이어 항공순양함 [[오요도]]도 폭격 당했다. 사실상 [[기함]] 역할을 한 두 함선이 얻어맞는 동안 구레 항의 나머지 대형함들도 신나게 폭탄 세례를 받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대형함들은 공습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했고 항구 주변에 도배된 [[기뢰]] 때문에 도주조차 할 수 없었다. [[운류급 항공모함]] 2번함 아마기와 3번함 카츠라기, [[이세급 전함]] 이세와 휴우가, [[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1번함 [[아오바(중순양함)|아오바]], 생존 [[구축함]]들, 그리고 '''[[러일전쟁]]'''[* 당시 기준으로도 '''40년 전'''이다! 21세기로 치면 [[베트남 전쟁]] 때 쓴 무기 꺼내서 쓴 꼴...] 때 쓰다 예비역으로 짱박혀 있던 걸 급하게 꺼내온 구식 장갑순양함 [[이와테]]와 [[이즈모]]까지 모조리 다 공격당했다. 그나마 수심이 얕아서 완전한 침몰은 면했지만, 대부분은 착저 상태로 상부 구조물만 을씨년스럽게 수면 위에 내놓은 상태였고 일부는 아예 전복된 상황이었다. [[휴우가]]는 살아남았지만 27일에 좌초함으로써 함생을 끝냈다. 같은 시각 영국 해군은 [[오사카]] 항을 공격해 [[호위항공모함]] [[카이요(항공모함)|카이요]]와 700톤급 [[호위함]] 2척을 격침시키고 단 4기의 항공기 손실만을 입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